Friday, December 14, 2012

앙똘레랑스에 대한 앙똘레랑스

 많은 조직이 그렇겠지만, 나같은 연구자들이 일하는 학계에도, 구성원간에 공유되는 honor code (명예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논문이나 그랜트를 리뷰하는 과정이 그 룰이 아주 잘 표출되는 예의 하나인데,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에디터나 재단은, 리뷰어들이 일단은 선의로 논문을 리뷰해 줄 것을 기대한다. 제출자의 데이터와 해석, 논의를 보고, 제출자의 입장에서 선입견을 배제한 채 그 논리가 맞는지를 판단하라는 거다. 그 논리의 진행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결함이 있지 않다면, 그 이론이 설사 기존의 이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넌 기존의 이론과 다르므로 탈락’ 이런 평가를 주는 일은 없(는 게 맞)다. 또한, 논문 제출자의 데이터가, 연구자로써 갖춰야 할 요건을 충족하면서 얻어낸, 신뢰할 만한 것임을 전제하고 평가를 내린다. 데이터 하나하나마다 ‘너 이거 원본 데이터 들고와 봐’라고 말하는 건, 아무리 리뷰어가 갑이라지만 ‘나는 너의 과학자로써의 기본 소양을 의심해야겠다’라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함부로 할 짓이 못 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불행하게도, 이 honor code를 저버리고 조작을 하는 자들이 생겨난다. 요새는 별별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판을 치고 있지만(그 중에 리뷰어 이메일 계정을 해킹해서 셀프 리뷰를 했다는 게 최근 들은것 중 갑이었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알고 있고(...) all-time best로 꼽힐 만한 케이스 중 하나는 바로, 많이들 예상하셨겠지만,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문 스캔들이었다.

  황우석은 유능했다. 원천 기술? 물론 있었겠지. 인간의 난자에서 핵을 치환하는 기술 자체는 누구도 그 전에 성공한 적이 없고, 그 동영상을 줄기세포 학회에서 발표했더니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쳤다는 얘기도 들었다. 논문을 썼다? 물론 썼지. 사이언스에서 처음에 논문을 받아 준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고. 

 하지만 그의 연구 결과중 대다수는, 저 honor code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데이터로써의 가치를 가지지 못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황우석 식으로, 인간 난자로 실험을 하는데 제대로 된 연구동의서도 받지 않고, raw data도 안 모아놓고, 실험노트도 안 쓰고, 데이터 조작해서 논문 쓰는 걸 ‘우리식 생명과학’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연구가 아니라, 조작이고, 한국의 생명과학자들을 깡그리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발언이라고.

 사실 무능한 과학자는 논문조차 쓸 수 없다. 하지만 조작된 논문을 쓰는 자는 실험을 못 하는 자만도 못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과학적인 논의를 시작할 가치조차 없다. 실험을 못 하는 자는 앞으로 잘 할 여지라도 있지만 (그런 찐따에게 연구비를 줘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는 좀 제껴두자. 저런 놈밖에 연구자가 없다는 데 어떻게 해..), 조작을 하는 자는 국민의 귀한 세금을 낭비해서 똥을 만들 뿐이니까.


 …시즌이 시즌이라, 여기서 뭔가 불편한 공통점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박정희는 유능했다. 경제 발전을 시켰다? 물론 시켰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국이 시킨대로 따라만 했건, 윤보선 정권에서 이미 다 만들어놓은 경제개발계획이건, 그의 집권기간에 고속 성장을 이룬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고, 정경유착으로 부정을 저지르고, 한 술 더 떠서, 정당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국가권력체간의 견제와 균형의 규칙을 깨뜨리고, 민중의 기본권과 언론의 자유를 긴급조치라는 희대의 법 같지도 않은 법으로 말살한 유신체제를 ‘우리식 민주주의’라고 하겠다? 그건 이승만의 독재에 맞서서 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대한민국 헌법이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두 번째 큰 기둥인 4.19 체제에 대한 강간이었을 뿐.

 사실 무능한 지도자는 독재조차 할 수 없다. 정치라는 것, 인간의 권력욕이라는 것이 얼마나 살벌한데, 무능하면서 그 자리를 정당화할 수(예컨대 세습 왕조의 왕이라든가)도 없는 지도자가 권력의 정점에서 노는 걸 내버려두나? 최악의 독재자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짐바브웨의 무가베는 영국의 식민통치에 맞서 싸우던 독립투사였고, 결국 총 맞고 죽은 리비아의 카다피도, 당장 위키피디아에 '리비아 대수로를 만들고 국민소득 1만불을 달성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헌법을 준수하고 실현할 의무’를 저버린 대통령을 더 이상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고 인정해야 하는가?

 학계는 창의성과 혁신적인 사고를 지향하지만, 새로운 주장에 대해 지금까지 쌓아놓은 정합성을 토대로 엄격한 검증을 거치고, 과학적/윤리적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배격한다. 민주주의는 그 구성원들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 체제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대항한다. '앙똘레랑스에 대한 앙똘레랑스'라는 표현, 뻔질나게 많이 썼고 쓸 때마다 논쟁을 불러오는 보증수표이지만, 민주주의 체제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시도가 존재하는 한 이 구절이 존재가치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 그러면, 이제 다시 황우석 얘기로 돌아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련다. 황우석 밑에서 실험 열심히 하다가, 결국 랩에서 교수 다음 넘버 2까지 돼서 연구비 관리하고 논문 쓰던 사람이 있다고 치자. 결국 논문조작 사건이 터졌는데, 자기는 논문에 이름이 들어는 갔지만 일단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항은 없다고 해 보자(실제로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열면, 논문의 데이터를 하나하나 분석해서, 조작이나 부정에 연루된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누는 보고서를 낸다).

 아마 제대로 된 학계에서라면, 그것만으로 상당히 큰 타격이겠지만, peer들이 대단히 너그럽거나 건망증이 심해서(...) 다시 기회를 얻게 된 과학자라면, 최소한 자기가 연구부정에 간접적으로나마 연루가 됐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그 실적으로 받은 연구비라든가 특전이 있다면 있으면 일단 자진 반납/몰수당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도의/규정일거다.

 근데 이 사람이, 또 다른 논문이나 그랜트에 지원하면서, 게제취소당한 페이퍼를 자기 연구 실적이랍시고 주장한다면?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연구관행'이었고, '황교수님은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강변한다면? 연구자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peer review system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 사람을, 학계에 받아주고, 논문을 실어주고,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를 지원해야 하는가?

 …이것이 내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야당에 어떤 찐따가 나오든, 박근혜만은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Quod Erat Demonstrandum (증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