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19, 2015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비행기는 인간이 만들어 낸 탈 것 중에서 가장 안전한 축에 속하는 물건이다. 대충 사고가 날 확률이 백만번 탑승에 한 번 꼴이니, 자동차나 기차 등등과 비교했을 때 절대 사망자 수나 주행(비행)거리당 사고율이 비교도 되지 않게 안전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행기 사고를 자동차 사고보다 훨씬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비행기 사고는 났다 하면 수백명이 죽는 ‘대형사고’가 되기 마련이고, 그 사고난 비행기에 타고 있다면 자기가 어떻게 한들 죽을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일게다. 즉 엄청나게 낮은 확률이지만,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공포가 과대계상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행기 사고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물론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가지 않는 것'을 택한다면, 분명히 이 선택은 (교통사고로 죽을) 위험을 줄여주거나 아예 0으로 만든다. 하지만 어쨌든 가야 하는 길이라면? 비행기 대신 자동차나 기차나 배를 타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사고 위험을 높일 뿐이다. 이쯤에서 내릴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은, (막연한 공포는 이성의 끈으로 잘 동여매놓고) 비행기를 타는게 가장 좋은 초이스라면 그냥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정 마음에 걸린다면 여행자 보험을 하나 들든가.

이쯤 되면, 세간의 입씨름을 낳고 있는 소위 '예방접종의 위험성'이 딱 이와 마찬가지 경우가 아닌가 싶다.

우선 제대로 된 분석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떤 (제대로 된) 의사도-심지어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백신을 몇 개 만드신 내 지도교수님도-예방접종이 100% 안전하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자. 모든 의료행위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약에 부작용이 있듯이, 백신에도 부작용이 있고 쓸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백신이 듣지 않는 사람도 있고,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사람도 있고, 백신에 과민반응해서 큰 탈이 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약은, 통계적으로 효능이 부작용보다 크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예방접종의 부작용이, 비행기 사고보다도 훨씬 공포를 과대계상하기 좋은(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이익을 과소평가하기 좋은) 조건을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일단 예방접종이라는 것 자체가, 건강한 사람이 아플 걸 대비해서 미리 투여한다는, 일반적인 약과는 정 반대의 컨셉이라는 점이 거슬릴 수밖에 없다. 약은 아픈 걸 낫게 하기 위해서 먹는거고, 그 아픈 게 낫는다면 어느 정도의 부작용(그 약이 항암제냐 두통약이냐에 따라서 감당할 수 있는 부작용이 천지차이이긴 하지만)이 생길 걸 각오하고 먹지만, 백신의 부작용은 멀쩡한 사람이 아프게 된 케이스이니 일단 심리적인 허용 수준이 엄청나게 낮다.  사실 제너가 우두를 자기 아들에게 심던 시절에는 정말 백신의 안정성이라는게 없다시피(...)했지만, 천연두라는 것이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질병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이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risk가 큰 대신 benefit도 큰 상황이었던 것이, 현대에 들어서 여러 의료환경의 개선(그중의 1번이 예방접종 그 자체, 그리고 항생제)에 힘입어, 예방접종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risk를 감당하기 힘든 의료법이 되어 버린 셈이다.

 자, 그럼 그 이유가 뭐가 됐던지간에, 당신이 당신의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실익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현실적으로 접근을 해 보자. 도대체 예방접종을 맞고 진짜 크게 사고가 날 확률은 얼마인가? 미국에서 vaccine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보상을 받은 케이스가 대충 지난 22년간 2천5백건이 조금 더 된다. ( http://en.wikipedia.org/wiki/Vaccine_injury ) 1년에 100건이 조금 넘는 셈이다. 해마다 미국에서 4백만명에 가까운 신생아가 태어나고, 스케쥴대로 예방접종을 다 맞으면 대충 첫해에만 10번에 가까운 주사를 맞게 되는데, 그러면 주사 한 번의 부작용으로 보상을 받을만한 피해를 입을 확률은 대충 비행기사고와 비슷하거나 살짝 높은 수십만분의 일 수준이 된다.

반면에, 현대사회에서 전염병에 걸릴 위험성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높다. 홍역(measles)은 당신이 아이와 함께 저 아마존 정글을 탐험했기 때문에 걸리는 게 아니라(...) 애를 데리고 사람 많은 데 놀러갔기 때문에(디즈니랜드가 말 그대로 홍역을 치렀다!), 아니면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는데 몇 시간전에(홍역 바이러스는 공기중에서도 수 시간 살아남는다) 병원을 방문한 홍역에 걸린 다른 어린아이 때문에, 심지어는 학교에 갔다가(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경우, 홍역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경우 감염확률은 90%(!!)에 육박한다) 걸린다.  지구 최고 수준의 방역/역학조사능력을 보유한 미국에서도,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홍역 바이러스를 실시간으로 캐치해서 소탕할 수는 없거니와, 일단 PCR부터가 NCIS처럼 실시간으로 안 나옵니다. 어쩔; 이미 몸속에 퍼져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법정전염병급 병원균을 피해없이 몰아내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홍역이 영유아에게 합병증을 동반할 가능성은 30%에 이른단 말이다! 뭐 큰 후유증 없이 살아난다면야 예방주사 맞은 것처럼 면역은 생기겠지만. 몸으로 때워서 배웠어요의 좋은 예

예방접종의 당위는 여러 차원에서 발생하고, Herd immunity를 유지해서 예방접종을 맞을 수 없는 사회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윤리적인 당위도 분명 있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국가, 아니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일관성있는 의료행위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이타적인 목적을 걷어내도, 제때 맞는 예방접종은 당신이랑 당신 자식 좋으라고 맞는거다. 원래 비행기 얘기로 돌아가서 마무리하자면, 당신의 자녀에게 예방접종을 맞추지 않는 것은, 위에서 말한 비행기의 비유에서 '아예 안 가는 것'이 아니라(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비행기가 위험하다며 지금이라도 바퀴는 떨어져 나갈 것 같고 브레이크는 밟히다 말다 하고 엔진은 당장이라도 퍼질 것 같은 고물차를 타고 대륙횡단을 하겠다고 나서는 꼴이란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antivaxer 부모 밑에서 자라서 매년 온갖 돌림병에 고생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안타깝다). 당신의 아들딸은 앞으로 80년 9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존재들인데, 무슨 대단한 걸 먹이고 입히고 할 게 아니라, 그냥 남들 수준의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을 심어주는 게 그들에 대한 최선의 투자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수십만분의 일 수준의,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하는게 아닌가 하는 수준의 특정할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공포는, 잘 배워서 사리분별 잘 하는 당신 스스로의 이성의 끈으로 잘 묶어두시고.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 뿐이다.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Franklin D. Roosevelt)

Friday, December 14, 2012

앙똘레랑스에 대한 앙똘레랑스

 많은 조직이 그렇겠지만, 나같은 연구자들이 일하는 학계에도, 구성원간에 공유되는 honor code (명예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논문이나 그랜트를 리뷰하는 과정이 그 룰이 아주 잘 표출되는 예의 하나인데,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에디터나 재단은, 리뷰어들이 일단은 선의로 논문을 리뷰해 줄 것을 기대한다. 제출자의 데이터와 해석, 논의를 보고, 제출자의 입장에서 선입견을 배제한 채 그 논리가 맞는지를 판단하라는 거다. 그 논리의 진행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결함이 있지 않다면, 그 이론이 설사 기존의 이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넌 기존의 이론과 다르므로 탈락’ 이런 평가를 주는 일은 없(는 게 맞)다. 또한, 논문 제출자의 데이터가, 연구자로써 갖춰야 할 요건을 충족하면서 얻어낸, 신뢰할 만한 것임을 전제하고 평가를 내린다. 데이터 하나하나마다 ‘너 이거 원본 데이터 들고와 봐’라고 말하는 건, 아무리 리뷰어가 갑이라지만 ‘나는 너의 과학자로써의 기본 소양을 의심해야겠다’라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함부로 할 짓이 못 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불행하게도, 이 honor code를 저버리고 조작을 하는 자들이 생겨난다. 요새는 별별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판을 치고 있지만(그 중에 리뷰어 이메일 계정을 해킹해서 셀프 리뷰를 했다는 게 최근 들은것 중 갑이었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알고 있고(...) all-time best로 꼽힐 만한 케이스 중 하나는 바로, 많이들 예상하셨겠지만,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문 스캔들이었다.

  황우석은 유능했다. 원천 기술? 물론 있었겠지. 인간의 난자에서 핵을 치환하는 기술 자체는 누구도 그 전에 성공한 적이 없고, 그 동영상을 줄기세포 학회에서 발표했더니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쳤다는 얘기도 들었다. 논문을 썼다? 물론 썼지. 사이언스에서 처음에 논문을 받아 준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고. 

 하지만 그의 연구 결과중 대다수는, 저 honor code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데이터로써의 가치를 가지지 못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황우석 식으로, 인간 난자로 실험을 하는데 제대로 된 연구동의서도 받지 않고, raw data도 안 모아놓고, 실험노트도 안 쓰고, 데이터 조작해서 논문 쓰는 걸 ‘우리식 생명과학’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연구가 아니라, 조작이고, 한국의 생명과학자들을 깡그리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발언이라고.

 사실 무능한 과학자는 논문조차 쓸 수 없다. 하지만 조작된 논문을 쓰는 자는 실험을 못 하는 자만도 못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과학적인 논의를 시작할 가치조차 없다. 실험을 못 하는 자는 앞으로 잘 할 여지라도 있지만 (그런 찐따에게 연구비를 줘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는 좀 제껴두자. 저런 놈밖에 연구자가 없다는 데 어떻게 해..), 조작을 하는 자는 국민의 귀한 세금을 낭비해서 똥을 만들 뿐이니까.


 …시즌이 시즌이라, 여기서 뭔가 불편한 공통점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박정희는 유능했다. 경제 발전을 시켰다? 물론 시켰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국이 시킨대로 따라만 했건, 윤보선 정권에서 이미 다 만들어놓은 경제개발계획이건, 그의 집권기간에 고속 성장을 이룬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고, 정경유착으로 부정을 저지르고, 한 술 더 떠서, 정당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국가권력체간의 견제와 균형의 규칙을 깨뜨리고, 민중의 기본권과 언론의 자유를 긴급조치라는 희대의 법 같지도 않은 법으로 말살한 유신체제를 ‘우리식 민주주의’라고 하겠다? 그건 이승만의 독재에 맞서서 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대한민국 헌법이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두 번째 큰 기둥인 4.19 체제에 대한 강간이었을 뿐.

 사실 무능한 지도자는 독재조차 할 수 없다. 정치라는 것, 인간의 권력욕이라는 것이 얼마나 살벌한데, 무능하면서 그 자리를 정당화할 수(예컨대 세습 왕조의 왕이라든가)도 없는 지도자가 권력의 정점에서 노는 걸 내버려두나? 최악의 독재자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짐바브웨의 무가베는 영국의 식민통치에 맞서 싸우던 독립투사였고, 결국 총 맞고 죽은 리비아의 카다피도, 당장 위키피디아에 '리비아 대수로를 만들고 국민소득 1만불을 달성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헌법을 준수하고 실현할 의무’를 저버린 대통령을 더 이상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고 인정해야 하는가?

 학계는 창의성과 혁신적인 사고를 지향하지만, 새로운 주장에 대해 지금까지 쌓아놓은 정합성을 토대로 엄격한 검증을 거치고, 과학적/윤리적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배격한다. 민주주의는 그 구성원들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 체제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대항한다. '앙똘레랑스에 대한 앙똘레랑스'라는 표현, 뻔질나게 많이 썼고 쓸 때마다 논쟁을 불러오는 보증수표이지만, 민주주의 체제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시도가 존재하는 한 이 구절이 존재가치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 그러면, 이제 다시 황우석 얘기로 돌아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련다. 황우석 밑에서 실험 열심히 하다가, 결국 랩에서 교수 다음 넘버 2까지 돼서 연구비 관리하고 논문 쓰던 사람이 있다고 치자. 결국 논문조작 사건이 터졌는데, 자기는 논문에 이름이 들어는 갔지만 일단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항은 없다고 해 보자(실제로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열면, 논문의 데이터를 하나하나 분석해서, 조작이나 부정에 연루된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누는 보고서를 낸다).

 아마 제대로 된 학계에서라면, 그것만으로 상당히 큰 타격이겠지만, peer들이 대단히 너그럽거나 건망증이 심해서(...) 다시 기회를 얻게 된 과학자라면, 최소한 자기가 연구부정에 간접적으로나마 연루가 됐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그 실적으로 받은 연구비라든가 특전이 있다면 있으면 일단 자진 반납/몰수당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도의/규정일거다.

 근데 이 사람이, 또 다른 논문이나 그랜트에 지원하면서, 게제취소당한 페이퍼를 자기 연구 실적이랍시고 주장한다면?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연구관행'이었고, '황교수님은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강변한다면? 연구자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peer review system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 사람을, 학계에 받아주고, 논문을 실어주고,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를 지원해야 하는가?

 …이것이 내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야당에 어떤 찐따가 나오든, 박근혜만은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Quod Erat Demonstrandum (증명 끝).

Friday, October 14, 2011

2011년 노벨생리의학상 이야기-intro.

2011년 노벨생리의학상은 면역 시스템의 중요한 두 기둥인 선천 면역(innate immunity)와 후천 면역(adaptive immunity)의 기본 개념을 정립하는 데에 결정적인 발견을 한 세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그 무슨 우리 몸이 병균이랑 싸울 때 백혈구가 어쩌고 항체가 어쩌고 하면서 고등학교 대학교때 대충 배운 것 같은데,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노벨상씩이나 주나? 라고 생각하신다면, 마침 이 바닥으로 살짝 넘어온 주인장이 개념정리 할 겸, 한 번 썰을 풀어놓아볼까 하니 읽어봐 주시길.

이제는 고아도 국물도 안 나올 정도로 우려먹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을 다시 떠올려 보면...응? 왜 갑자기 또 진화 얘기가 나오냐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면역(immunity)의 개념이야말로 생명의 진화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선천면역의 기본 개념은 말 그대로 몸 속으로 들어온 병원균을 먹는(phagocytosis) 작용인데, 이건 심지어 단세포생물인 아메바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수억년의 시간을 거쳐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고..

다시 돌아가서, 생명체는 그 안에 있는 유전자를 후대로 물려주는 것이 생존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라고 하면 그 특유의 도킨스식 설명이 되고, 결국 간단히 말해 개체가 유전자를 후대로 많이 물려주도록 적응(adaptation)하는 것이 장땡이다. 하지만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개체의 적합성(fitness)이 올라가야 하는데, 하루를 48시간으로 산다든가 같은 물질에서 에너지를 두 배씩 뽑아내지 않는 한 자기의 적합성을 올리는 데에는 당연히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십억년간의 진화를 거듭해 온 현재 지구상의 미생물들께서는, 주로 다른 개체를 견제하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적합성을 유지하는데, 그 방법은 바로 화학전 그 자체이다. 페니실린으로부터 시작한 수많은 항생제(antibiotics)들이, 사실은 미생물들이 경쟁상대들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 내는 물질들인데, 이걸 분리해서 구조를 분석하고, 효능을 좋게 하기 위해 작용기 몇 개를 슬쩍 바꿔 만든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는지? (사실 이런 화학전은 단세포 대 단세포뿐 아니라 인간과 감염균들과의 사이에서도 일어나는데, 예를 들자면 허구헌 날 우리 몸에서 세균과 맞닥뜨리는 부분인 상피세포들이 다양한 종류들의 anti-microbial peptide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림 1. 모든 항생제의 어머니 페니실린. 다들 아시는 푸른곰팡이의 전가의 보도.

내가 아닌 건 다 처리해버렷! (근데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그런데 생존경쟁을 단순히 미생물들간의 드잡이질(…)이 아닌 단세포 vs 다세포의 수준으로 넓혀보면, 다세포생물들은 좀더 고상한 방식의 자기방어체계를 갖출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다세포생물의 큰 장점 중 하나인 생존에 필요한 일을 각각의 기관과 세포가 분업함으로써 시스템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내가 아닌 건 전부 처리해버리는’ 세포들을 만드는 것이다! 오오.

...근데, ‘내’가 누구지? 주변을 둘러보면 나같이 생긴 놈은 별로 없고, 길쭉길쭉하게 생긴 놈, 뚱뚱하게 생긴 놈, 끄트머리에 삐죽삐죽한 거 달린 놈, 다 제각각인데? 그냥 다 때려잡으면 되는건가효?



그림 2. 실로 다양한 인간의 세포들.

자,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다세포생물들을 구성하는 각각의 세포들은 기하학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제각각 다르다. 물론 핵 속에 들어있는 genomic DNA의 정보는 대략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불심검문도 아니고 지나가는 세포의 핵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내 세포' 만도 이렇게 다양한데, 어느 정신에 '내가 아닌 세포'를 찾아서 때려잡냐고?

바로 이 피아식별의 문제가, 다세포생물의 면역 시스템이 맞닥뜨리는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로, 대충 면역학 교과서의 절반 이상이 어떻게 이 과정을 수행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할애되어 있다. 게다가 단순히 이론적으로 중요한 것뿐이 아니다! 농구를 할 때 안 되는 건 오펜스와 디펜스요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항암제이거나 발암물질이듯(...) 면역에 관련해서 생기는 질환은 크게 딱 두 개다. 적을 제대로 제대로 처리 못해서 생기는 감염 관련 질환 아니면 면역계가 미쳐서;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그것으로, 피아식별이 안 되면 면역계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니, 있느니만도 못하지. 류마티스성 관절염, 1형 당뇨, 루푸스, 다발성 경화증, 각종 염증성 장질환... 증상과 발병 시기는 다양해도, 전부 다 자가면역반응이 주 원인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푸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세 사람-선천성 면역(innate immunity)의 핵심 개념인 pattern recognition을 연구한 Beutler와 Hoffman, 그리고 후천성 면역(adaptive immunity)의 방아쇠로 작용하는 수지상 세포(dendritic cell)를 발견한 Steinman이-올해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것이다.




그 자세한 얘기는 다음 글에...

(여담이지만 이 피아식별의 문제나 기타 여러가지 유사성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면역 시스템을 전쟁에 비유하곤 하는데, 적의 탐지(recognition)-무력화(neutralization)/제거(removal)와 같은 일련의 반응들을 살펴보면, 실제로 두 현상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은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물론 몸 속에서 별 문제 안 일으키고(사실은 도움까지 주면서) 조용히 살거나, 심지어 몸 밖에 있는 미생물들 때려 잡겠다고 선제적 타격따위는 하지 않는 우리의 몸은 (아, 물론 정상적인 상황에서)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 때려잡겠다고 돈과 시간과 생명을 물쓰듯 하는 모 나라보다는 훨씬 점잖은 것이 사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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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남기는 글.

Thursday, April 14, 2011

Plan B가 없는 사회

교수님,

저는 생화학자입니다. 학자는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설명한다고 하지요. 기계공학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취향에 맞으실지는 모르지만, 요새 일어나는 일들을 제가 잘 알고 있는 언어로,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을 빌어서 해 볼까 합니다.

대장균이 들어있는 플라스크를 두 개 떠올려 주세요. 이 안에는 균들이 증식할 수 있는 영양소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이 플라스크를 따뜻한 곳에 두고, 적당히 흔들어주면서 하루정도가 지나면 플라스크가 대장균으로 우글우글하게 될겁니다.

자, 여기다가 작은 변화를 주겠습니다. 플라스크 하나에 페니실린*(사실 페니실린은 대장균에게는 잘 안 듣기때문에, 대신 동생뻘인 앰피실린같은 항생제를 씁니다. 뭐 편의상 페니실린이라고 하죠), 을 넣는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네, 인류를 살린 기적의 물질이, 아마도 99%, 많으면 99.9%의 대장균을 죽여버릴겁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1%, 0.1%의 균들은 내성이라는 걸 획득합니다. 페니실린이라는 독한 항생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수한’ 균이 되는 거지요. 일단 이런 내성균들만이 살아남게 되면, 그 균들은 페니실린을 비웃듯이 플라스크를 가득 채울 정도로 번식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중등교육은 벌써 저 페니실린 플라스크의 구실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KAIST 입학생들은 이미 내성을 많이 획득한 상태지요. 그리고, ‘징벌적 등록금(저는 이 단어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작금의 상황을 잘 축약해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개선된' KAIST 체계는, 또 다른 거대한, 페니실린이 잔뜩 들어간 '독한 플라스크'입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입학사정관제의 비극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내성이 없이는 살 수 없는 플라스크에, 다른 방면으로의 뛰어난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페니실린 내성은 별로 없을 것 같은 몇몇 인재들을, 이미 내성을 가지고 있는 99%와 함께 집어넣고 잘 살아보라고 한 격이니까요.


대학은 페니실린 플라스크가 아닙니다

자, 원래의 플라스크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진짜 재미있는 실험은 이제부터거든요. 두 플라스크-정상균과 내성균-의 대장균들을 적당한 방법으로 표시를 한 뒤, 자연적으로 대장균이 우글우글하는 장소에다 풀어놓습니다. 하수처리장쯤이 좋겠네요. 그리고 일정한 시간들을 기다린 뒤, 얼마나 이 플라스크의 균들이 하수처리장을 장악하고 있는지 보는 겁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페니실린 없는 배지에서 자란 균들이 자연상태에서 훨씬 더 잘 경쟁하고 살아남습니다. 제가 이 실험을 직접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내성균과 비내성균간의 경쟁에서, 선택압이 없다면 비내성균이 승리하는 경우는 상당히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획득된 내성이 ‘훌륭할수록’, 내성균들은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경쟁력을 더 크게 상실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내성균은, 내성이라는 생존에 유리한 강력한 무기를 획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함균이기 때문입니다.

페니실린 내성균은 균 내부로 들어오는 페니실린-세포벽이 형성되는 걸 막아서 세포가 분열될 때 터져버리게 만듭니다-을 무력화시키는 효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무기지요? 하지만, 페니실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이라면, 이 무기는 짐이 될 뿐입니다. 왜냐구요? 개개의 생물체에게 주어진 자원과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페니실린이 가득한 플라스크 안에서는 다른 생존에 덜 필수적인 요소들을 다 버리더라도, 페니실린 내성 유전자에만 매달린 균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KAIST의 졸업생들이 지금의 시스템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지금 KAIST가 펴고 있는 다양한 정책들을 어느 정도 정당화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혹은 다행히도), 학생들이 학부를 졸업한 뒤 맞딱드리게 되는 환경은, 페니실린 잔뜩 들어간 또다른 플라스크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하수처리장에 좀 많이 가깝다는 데에 지금의 문제가 있습니다. 공부 잘 하고 학점만 잘 받아서 인생 편히 잘 살 수 있으면, 그것도 뭐 좀 심심할지도 모르겠지만 훌륭한 선택이겠죠. 근데 KAIST의 구성원 모두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존영역을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플라스크 밖에서, 페니실린 내성은 별 쓸모가 없는 장식정도가 아니라, 생존성을 좀먹는 입니다.

대학의 학부과정은 완성된 인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을 하건, 더 심화된 연구를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하건 그들의 여정은 거기에서 비로소 시작입니다. 그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필수적인 교양을 심어주는 것이 학부과정이 지향해야 할 목표입니다. 더욱이 창의적인 과학자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쓰고 있는 KAIST는, 특정한 방향으로 선택압을 조절(또는 조작)함으로써 그들이 학점뿐만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할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됩니다.


Plan B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

제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저도 학부때는 꽤 공부 잘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공수업을 당겨서 듣고, 2학년이 끝날때쯤에는 졸업에 필요한 수업들은 얼추 다 채울만큼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겨우겨우 진도나 따라가면서 들었던 수업들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도대체 뭘 배우는 지도 모르겠고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방황했을 때, 학점 신경쓰지 않고 들었던 다양한 수업들이나, 대학생이기때문에 할 수 있었던 다양한 일들이 없었다면, 학점은 조금 더 잘 받았을지언정 아직도 계속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만약 당장 학점이 빵꾸나면 수십만원씩 ‘징벌적 등록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졸업을 앞둔 화학과 학부생이 약대 전공수업을 기웃거리다가 C를 받는 시도따위는 해 볼 수 없었겠죠. 지금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전공 공부와는 하등 관계없을 것 같은 ‘인간생명의 과학적 이해’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인간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하면 생물학의 수준으로 설명하고,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쉬운 말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요새 통섭이다 학제간 연구다 또 새로운 바람이 부는데, 어느 누구도 모든 분야에 처음부터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리고, 페니실린 플라스크는 generalist를(그리고 많은 경우에는 specialist도) 키울 수 없습니다.

어느새부턴가 우리 사회가 plan B를 허용하지 않게 바뀌어 왔습니다. 단순히 재도전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최고의 답인 plan A가 존재하고, 그 plan A를 따라가지 못한 사람을 낙오자 취급하는 사회에서, 그것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해야하는 것이 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적 다양성이야말로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KAIST를, 오랫동안 몸담고 계셨던 MIT와 같은 수준으로 만들고 싶다는 교수님의 열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MIT가 학생들에 대해 높은 수준을 기대하고 있고, 학생들이 받는 부담감도 높으며, 자살과 같은 불행한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KAIST 학부를 MIT 학부처럼 만들고 싶다면, 우선 MIT에 jazz 전공과 연극 전공이 있고, 학생 동아리인 MIT orchestra는 해마다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주며, MIT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교수가 전자공학이나 화학이 아닌 언어학의 거두로, 동시에 정부와 기득권세력에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치 않는 노엄 촘스키라는 사실부터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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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바위에 쓴 글.

Monday, April 12, 2010

Still in...

아직도 같은 주제로 씨름중... 위 만화가 너무 절실히 와닿음.

Thursday, December 10, 2009

근황



이사와 논문 준비 덕분에 실험 안한지가 어언...
그래도 이제 대충 매스가 셋업됐으니 슬슬 돌려보긴 해야지.

Monday, November 23, 2009

이사 스트레스

랩이 이사를 하게 되어서(그래봐야 실제 움직이는 거리는 채 삼백 미터도 되지 않지만, 어쨌든 이사는 이사인데다가, 우리처럼 기계 많은 랩들은 완전 oTL이다) 요새 랩 사람들이 좀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그 중에 역시나 일등은 왕자님....

왕자님 나쁜 버릇중에 하나가 예전 기계를 못 버리게 하는건데, 역시나 Rong(나랑 비슷한 쪽 일을 하는 instructor)이랑 20년 된 펌프 하나 버리겠다고 내 놓았다가 한소리 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랩에 그 펌프보다 좋으면서 '놀고 있는' 펌프가 세 대는 있는데 도대체 왜! 더군다나 옮겨가는 랩은 shelf space가 부족해서 둘 데도 없는데!

...유리 캐비넷 하나 사서 왕자님 집무실에 골동품 박물관 하나 만들어줘야 이해하려나..

@저녁먹으러 갈까 하니까 이젠 십년도 넘은 book end(책 넘어지지 말라고 책장에 끼우는 받침대.. 뭔가 멋지게 생긴 것도 아니고, 이미 밑에 스폰지는 다 해져서 책을 받칠수도 없다..) 빼놓은것까지 버리지 말라고 하네. 나참 어쩌라고 oTL

Wednesday, November 18, 2009

For the love of the God...




아 이 사진 너무 맘에든다 ㅠㅠ

(사진의 캡션과 주인장의 현재 심리는 별 상관 없습니다)

논문 continued

논문을 괜찮은(특급은 아니지만) 저널에 내려다 보니 신경써야 할 게 엄청나게 많다. 덕분에 왕자님한테 온갖 종류의 조언(이라고 쓰고 쿠사리라고 읽음)을 듣고 있다..

가장 놀라운 거라면 reference-논문 읽으면서 reference는 말 그대로 참고문헌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에 따라서 이게 엄청나게 political한 포지셔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

그래도 figure는 대충 다 교수님 눈높이를 맞춘 것 같으니 이제 writing만 남았(...'만'이 아니잖느냐 헐퀴)

Wednesday, November 4, 2009

드디어

교수님이 내 논문 manuscript를 가져가셨다. Have my finger crossed..

Friday, October 30, 2009

생일이었습니다.

빠질 수 없는 저녁 세미나가 있어서, 케익도 안 잘랐네요.
갑자기 실험을 잡으신 마눌은 새벽 한 시가 다 돼서 집에 오시고..
(그래도 아침에 미역국은 끓여주셨음)

주말에 오페라 보러 맨해튼에 갑니다.

Wednesday, October 21, 2009

한국 결산

한국에 있는 동안엔 너무 바빠서 글 쓸 새가 없었다. 지난 일요일 밤에 도착해서 오늘 아침까지, 실제로 있었던 날은 9일. 그 동안 학회가 두 개가 겹쳐서 아침저녁으로 톡하고 서울대랑 포항공대에서 세미나하고 서울과학고 가서 후배들한테 강연(-_-;;)하고..

우리가 하는 연구가 한국에선 별로 안 알려져 있다고 여겼는데(2007년에 포스터 할 때 손님 정말 한 명도 없었음), 생각과는 다르게 여기저기서 질문러시를 해대서 놀랐다. 한편으로는 뿌듯하면서도 역시 학계는 데이터가 없으면 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절감했기도 했고..

아무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부쩍 많아졌다. 보스턴 가면 얼른 논문 마무리해야지.

Wednesday, October 7, 2009

푸념

이틀 뒤면 한국에 가는데 한국 가서 해야 하는 30분짜리 talk 하나(사실은 두 개)가 속을 썩이고 있다. 지지난주 미팅에서 한 번 크게 발리고, 오늘 다시 했는데 전혀 나아진게 없다. 사실 이 발표가 교수님 대타라서 교수님이 expectation을 높게 잡아놓은 것도 있지만, 사실 요새 좀 방만하게 준비를 한 것도 있다. 딱히 하는 실험도 없고, 논문과 발표 준비를 한다고 거의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뭐가 딱히 progress가 보이지 않는다.

졸업준비할때는 졸업논문만 쓰면 세상 만사가 다 해결될거같았고 논문 준비할때는 논문만 주고 나면 다 해결될 것 같았는데, 역시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없어지지 않는다.

맨날 동원당해서 한시간 넘게 잔소리를 같이 들어야하는 랩사람들한테 미안하다. 금요일날은 좀 제시간에 끝내고 싶은데 으으.

Tuesday, September 29, 2009

1st draft done

한국가기 전에 manuscript 두 개 중 하나를 투고하는게 목표였는데 교수님이 grant 쓰느라 그 계획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고... 아무튼 다 쓰긴 다 썼다. 이제 남은 건 교정, 빨간펜, 커멘트.

Monday, September 28, 2009

우리 바이올린이 달라졌어요! @_@

스누포 연주회 전에 근 2년이 돼가는 줄을 갈았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그러질 못했다. 덕분에 보스턴으로 돌아온 다음에 이제서야라도 갈아보려고 줄을 한방에 다 풀었더니 아니나다를까 건조한 날씨에 사운드포스트가 넘어지는 사고 발생... oTL

2년 전에 역시나 건조한 날씨덕에 윗판이 지대로 크랙나는 사고를 무난히 때워준(한달 밥값이 날아가긴 했지만) 동네 바이올린집에 갔는데(근데 동네 바이올린집이 NEC랑 BSO 앞에 있어서 신문에도 나는 무서운 데라는..), 역시나 쥔장 아저씨는 2년간 하나도 바뀌지 않은 방망이깎는 노인급의 불친절함으로(...) 포스트 reset, 줄 교체, 브릿지 조정과 (보험 때문에) 악기 감정을 맡겼더니 퉁명스럽게 놓고 갔다가 닷새 후에 찾으러 와 그러더라.

아니나 다를까, 연주회 보기 전에 토요일에 찾으러 갔는데도 역시나 포스트만 세워놓고 나머진 하나도 안해놨다. -_-+ 덕분에 밥먹을 시간을 뺏겨가며 작업 대기.. 악기사에서 몇 번 그어보고 오고 싶었지만 현을 방금 바꾼 바이올린이 제대로 소리가 날 리가 없어서, 이상해졌으면 다시 고쳐내라고 할테다 투덜투덜 꿍얼꿍얼 거리며 집에 와서 오늘 아침에 풀어봤는데...

오, 이건 예전 내 악기가 아닌데? +_+ 마눌님도 딱 듣고는 소리가 좋아졌다고..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니, 사운드포스트를 조절하면서 울림이 최적화되는 스팟을 찾았을테고(처음에도 그런 자리에다가 세팅을 하지만 몇 년 쓰다보면 나무가 팽창수축하면서 sweet spot에서 빗겨나가게 마련이다), 게다가 펙에다가 줄을 감은 걸 보니 완전 예술이다(인증샷!). 잡진동들이 싹 사라질만도 하네. 음색이 조금 쇳소리스러운건 줄을 방금 간데다가 E선에 steel core인 Pirastro Gold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치고, 한 일주일 굴려보면 아주 만족스러운 소리가 날 것 같다. 그러고도 여전히 깽깽거리면 gut현인 Eudoxa나 Oliv로 바꿔주든지..(바이올린, 그중에서도 E현은 기성품으로 구할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줄이 2만원정도니 그나마 다행...)


보험용 가격감정은 원래 고정가격 받는거니 그렇다고 치고, 단돈 12불(+줄은 내가 가져갔던터라 따로 안 받았음)에 이런 놀라운 변화가! ...스누포 연주회 하기 전에 손 좀 볼걸 oTL

ps. 자 이제 동네 오케스트라를 알아볼때가...(어이 포닥자리나 좀 찾아보고 그러지?)

Sunday, September 27, 2009

BSO 2009-2010 1st week : Stravinsky / Mozart

Gina Hagen, Concert at Symphony Hall

이틀 전 토요일은 Boston Symphony Orchestra의 2009-2010 시즌 첫 정규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대개 이 나라 오케스트라는 보통 opening night ceremony-표값이 '많이' 비싸고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fundraising을 겸한-을 9월 말이나 10월 초 주중에 하고 (NYP은 지난 주, BSO는.. 수요일이었나? Chicago나 LAPhil등등도 이번 주 언저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말에 바로 정규시즌을 시작한다. 사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opening night은 표값도 비싸고(제일 싼 표가 대충 일반 공연의 3배정도부터 시작한다), subscription series에도 안 들어있고, 백화점식 레파투아를(라벨빠 레바인은 이번에도 베를리오즈(서곡)-쇼팽(피협)-세계초연(하프 협주곡?!)의 마무리로 라벨의 La Valse를 집어넣었다) 연주하기때문에, TV로 보거나 라디오로 들으면 괜찮을지 몰라도 가서 보기엔, 개인적으론, 가격대 성능비가 좀 별로다.

반면 토요일 레파투아는 딱 두 번밖에 하지 않고, 작년에 이어 Requiem(작년엔 브람스, 이번엔 모차르트)을 Week 1 메인으로 하는 거라서, 예전부터 벼르고 있던 공연이었다. 그러고보니 시즌 오프너로 레퀴엠을 하는 건 좀 신기한데, 매년 이맘때가 유대교의 Yom Kippur(참회일)과 맞물리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올해 Choir가 나오는 공연이 대충 이것과 멘델스존 오라토리오 엘리야, 베토벤 9번 정도였던 것 같은데 표가 다 있다(...) 합창곡에서 레바인의 진가가 발휘된다는 어설픈 믿음의 발로랄까.

작년의 독일 레퀴엠은 아주 좋았지만 우리 자리가 너무 무대에 가까워서 합창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공연은 따로 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subscription seat에 앉을 수 있어서좋았다(이 자리가 8월까지 남아있었던 걸 보면, 올해 BSO 장사 잘 못한 것 같다.. 하긴 그러니 요새 덤핑하겠지) 사진이 없어서 좀 아쉽긴 한데.. 스트라빈스키의 시편교향곡은 전반적으로 무난했던(?!) 것 같고, 레퀴엠은 초반에 바이올린이 몸이 좀 덜 풀렸는지(아시겠지만 시편교향곡은 편성이 변칙이라 현이 첼로밖에 없다...) 처음부터 좀 삐그덕대더니 Dies Irae에서 마구 달려버리는 통에 피날레가 상당히 어기적어기적 거리는 안습상황 발생; (BSO 현이 이렇게 심하게 어기적대는 건 거의 처음 들어본 것 같... 역시 모차르트는 어렵다 oTL) 그러나 그 이후로는 무난히 잘 수습했다. 알토와 테너의 소리가 좋았고, Lacrimosa와 Benedictus의 중창도 밸런스가 잘 맞았던 것 같고. 탱글우드 코러스는 뭐 원래 잘해요.

Season kickoff로는 조금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선방.


Saturday, September 26, 2009

열며

이미 꽤 많은 시간을 온라인상의 글쓰기와 수다에 쓰고 있긴 하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을까 해서 열어봅니다.
제 스타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마 제목대로 될 듯.